2009년 2월 23일 월요일

실존 인물 ANNA BOLENA

앤 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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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볼린의 사후에 그려진 초상화
앤 볼린(Anne Boleyn, 1504년? - 1536년 5월 19일)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아내이며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다. 헨리 8세는 앤 볼린과 결혼하려고 민족주의 성격의 종교개혁을 일으켜 잉글랜드 교회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시켰다.
딸 엘리자베스를 낳은 후, 불륜과 이단, 모반 등의 혐의를 받아 1536년 5월 19일 사형당했다. 그로부터 11일 후에 헨리 8세는 앤 볼린의 시녀였던 제인 시무어와 결혼하였다.

[편집] 생애
앤 볼린의 아버지는 외교관 토머스 볼린, 어머니는 명문집안인 하워드 가문의 엘리자베스였다. 생년월일은 명확하지 않으나 초여름에 노포크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총명하고 재치있는 성격으로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궁정에서 수업을 받으며 예법을 닦았고 프랑스어라틴어에 능숙했다. 프랑스의 루이 12세의 왕비 메리 튜더의 시녀가 되었다가 루이 12세가 승하하고 프랑수아 1세가 즉위하자 새 왕비 클로드의 시녀가 되었다. 오랜 프랑스 생활로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앤 볼린은 이후로도 프랑스식 옷차림, 문학, 음악, 그리고 종교개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1521년경 앤 볼린은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을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와 헨리 8세의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가 된다. 지참금 문제로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이 무산되자 앤 볼린은 노섬브리아 공작의 후계자 헨리 퍼시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 차이와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반대로 퍼시와의 결혼은 무산되었다. 이에 낙심한 헨리 퍼시는 궁정을 떠났다.
전기작가 안토니아 프레이저에 따르면 헨리 8세가 앤 볼린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1526년경이라고 한다. 앤 볼린은 전통적인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인은 아니었으나 흑발에 까만 눈의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당시 유럽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받은 교육 덕분에 세련된 기품이 배어 있었으며 화술도 뛰어났다. 이미 앤의 누이(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정확하지 않음) 메리 볼린을 정부로 두었던 전력이 있는 헨리 8세는 앤마저 정부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앤은 왕의 유혹을 거절하며 정식 결혼을 요구했다. 왕비 캐서린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던 헨리 8세는 젊은 앤 볼린이 왕자를 낳아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1527년 헨리 8세는 캐서린과의 이혼을 시도하였다. 캐서린의 거센 저항과 로마 교황청의 끈질긴 반대에 부딪히자 헨리 8세는 결국 종교개혁을 일으켜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시키고 나서 스스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529년부터 앤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잉글랜드 궁정에서 출세가도를 걷는다. 하지만, 앤 볼린은 신실한 캐서린 왕비를 왕궁에서 쫓아낸 여자라고 백성의 반감을 샀다.
1532년 헨리 8세는 앤에게 펨브로크 후작부인(Marquess of Pembroke)의 지위를 내려 그녀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미혼 여성이 직접 작위를 하사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해 크랜머 대주교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을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무효로 했다.
1533년 1월경 헨리 8세와 앤 볼린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앤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같은 해 6월 1일 앤 볼린은 호화로운 예식을 통해 잉글랜드의 왕비로 즉위했다.
1533년 9월 7일 앤은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헨리 8세는 실망했으나 곧 아들도 생길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앤이 수차례에 걸쳐 유산을 반복했고,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잦아지자 왕의 마음도 앤에게서 멀어졌다. 대신 왕은 앤 볼린의 시녀 제인 시무어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앤 볼린의 정적 토머스 크롬웰제인 시무어를 지지하면서 왕비와 볼린 가의 추락을 획책했다.
1536년 앤 볼린과 남동생 로시포드 공작 조지 볼린, 그리고 두 사람과 가까운 귀족 청년들 몇몇은 간통과 반역, 근친상간 혐의로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심지어 앤 볼린은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으나 앤 볼린은 두 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참수형이 확정되자 앤은 자신의 시녀에게 “내 목이 가늘어서 다행이다.”라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동생 로시포드 공작이 처형당한 지 이틀 후인 5월 19일, 앤 볼린은 런던 탑에서 참수되었다. 사형장에서 앤 볼린은 구경꾼들에게 왕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충성을 다해 섬겨달라고 부탁하는 연설을 남겼다. 앤 볼린의 마지막 말은 “주님께 제 영혼을 맡깁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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